처음 / 스토리

왜 매일 새벽 5시인가

한 잔의 커피 뒤에는 농부의 일 년, 로스터의 새벽, 도예가의 손이 있습니다. 호산 로스터스가 시작된 14년의 이야기를 8개 챕터로 풀어냅니다. 천천히 읽어 주세요.

Chapter 01

2010년, 첫 잔의 기억

저는 호산 로스터스의 로스터 최우진입니다. 1985년에 태어나, 2010년 봄에 처음으로 손님께 커피 잔을 내었습니다. 종로의 작은 카페 카운터에서 일했던 그날, 첫 잔을 받으신 손님이 “이건 다른 잔보다 좀 더 따뜻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한 마디가 14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잔을 단지 음료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따뜻한 잔이 왜 따뜻한지, 단단한 잔이 왜 단단한지를 묻기 시작한 것은 그날 이후입니다. 어떤 손님은 잔을 받으면 옅게 웃고, 어떤 손님은 한 모금 마시고 멈춥니다. 잔에 담기는 것은 음료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일본 교토의 작은 로스터리에서 한 달간 견습을 했습니다. 60대 로스터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양만 볶는 모습을 보고, 저는 처음으로 “덜 만들고 잘 만든다”는 말의 무게를 배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언젠가 작은 카운터 하나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Chapter 02

새벽 5시, 도시가 가장 조용한 시간

저희가 매일 새벽 5시에 로스팅을 시작하는 이유는, 그 시간이 도시 안에서 가장 조용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12kg 드럼 로스터의 1차 크랙은 작은 폭죽처럼 들립니다. 톡, 톡, 톡. 7초 간격으로 시작되는 그 소리가 명확히 들리려면, 주변이 조용해야 합니다. 6시 반에는 차들이 다니기 시작합니다. 그 전에 끝내야 합니다.

새벽 5시의 작업장은 어둡고, 드럼 로스터의 작은 인스펙션 창에서 흘러나오는 주황빛만이 전부입니다. 저는 그 빛 앞에서 매일 30분 동안 같은 자세로 앉아 있습니다. 트라이어를 빼서 향을 맡고, 다시 넣고, 1초씩 내려가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한 배치는 12분입니다.

12분이 짧아 보이지만, 그 12분은 매번 다릅니다. 어제와 같은 원두라도, 어제 새벽보다 0.5도 추웠다면 오늘은 다른 잔이 됩니다.

저희는 이 12분을 매일 4번 반복합니다. 하루 48kg, 한 달 약 1.2톤. 그렇게 작은 양만 볶기에, 손님 잔에 닿는 시간이 짧을 수 있습니다. 신선함은 시간이 아니라 양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Chapter 03

2017년 봄, 호산이라는 이름

2017년 4월, 성수동의 작은 인쇄소가 문을 닫는 자리에 들어갔습니다. 30평이 안 되는 공간이지만, 천장이 높고 길었습니다. 첫 손님을 받기까지 두 달 동안 직접 카운터를 깎고, 벽을 칠했습니다. 도와준 친구들이 두 명, 그중 한 명이 지금의 도예가 한도윤입니다.

“호산”이라는 이름은 어머니의 호에서 가져왔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한 가지 일을 하셨고,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그 일을 하셨습니다. 작은 카페를 시작하면서, 저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거대한 일이 아니더라도, 한 자리를 오래 지키는 일.

· 매장 오픈 2017.04.15 · 첫 달 손님 142명 · 평균 매일 5잔
Chapter 04

케냐 키암부의 새벽 6도

2019년부터 매년 한 산지를 찾아갑니다. 직거래로 원두를 들여오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잔 안에 담기는 사람들의 얼굴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첫 해는 에티오피아 시다모, 두 번째 해는 콜롬비아 우일라, 세 번째 해는 케냐 키암부.

키암부는 해발 1,800m, 새벽 5월의 기온이 6도였습니다. 농부의 손은 이미 따뜻했고, 손가락 끝은 빨간 체리의 즙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한 봉지 50kg을 채우는 데 두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그 두 시간 동안 농부는 5천 개의 체리를 눈으로 골랐습니다.

저희가 한 잔을 4분에 만든다고 했을 때, 그분이 웃으셨습니다. “4분이면 길게 만든 거네요.”

한 잔의 시간은, 잔을 만드는 사람의 시간이 아니라 잔을 위해 일한 모든 사람의 시간을 합한 것입니다.

Chapter 05

잔을 빚는 사람, 한도윤

호산 매장에서 사용하는 모든 잔과 받침은 한도윤 작가가 빚습니다. 한 작가는 도예 13년, 그중 7년을 호산과 함께했습니다. 매장에서 사용하는 잔은 매달 새로 빚습니다. 산지가 바뀔 때마다, 잔의 무게와 입술 닿는 면의 두께를 미세하게 조정합니다.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 코체레처럼 산미가 강한 잔은 입술 닿는 면을 얇게, 케냐 키암부처럼 묵직한 잔은 두껍게 만듭니다. 잔을 들었을 때의 무게가 잔의 첫인상을 결정한다고, 한 작가는 말했습니다.

매월 첫 화요일, 매장 오픈이 오후 2시인 이유는 그날 오전에 한 작가의 작업실에서 새 잔을 받아오기 때문입니다. 한 잔에 닿는 사람의 손이 한 사람만이 아니어야 합니다.

Chapter 06

2020년 봄, 매일 14잔의 시간

2020년 봄, 도시가 멈추었을 때 저희도 멈출 뻔했습니다. 한 달 손님이 50명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매장을 닫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단골 분 몇 분이 “원두만 보내 주세요. 집에서 마실게요”라고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위클리 빈’ 멤버십의 시작이었습니다.

그해 가장 적게 만든 날은 14잔이었습니다. 손님 14명. 저는 한 분 한 분의 얼굴을 외우고 있었고, 어떤 잔을 좋아하시는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14분을 위해 12kg를 다 볶을 수는 없었습니다. 매일 양을 줄이고, 손으로 결점두를 더 천천히 골라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때 저는 처음으로 “이 일을 평생 하고 싶다”는 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잔을 줄이는 것은 가능하지만, 멈추는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Chapter 07

2024년, SCA 87.5의 일관성

2024년 한 해, 저희가 가장 많이 들은 칭찬은 “일관적이다”라는 말이었습니다. 같은 잔이 같은 맛으로 1년 내내 유지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저희는 매주 산지가 바뀌지만, 한 산지 안에서의 일관성은 0.5점 안에 들어옵니다.

이 일관성은 두 가지에서 옵니다. 첫째는 매일 새벽 직접 볶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손이 12분의 끝을 결정하면, 변수가 한 가지로 줄어듭니다. 둘째는 24시간 이상 레스팅한 원두만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스 빠지는 시간이 일정해야, 추출도 일정합니다.

완벽함은 매번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를 매일 같은 깊이로 반복하는 것입니다.

Chapter 08

다음 14년, 같은 카운터에서

호산 로스터스의 14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다음 14년에 대해서, 저는 큰 계획이 없습니다. 더 큰 매장을 열거나, 지점을 내거나, 프랜차이즈를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단지 같은 자리에서, 같은 새벽에, 같은 12분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매일 마시는 잔이 어제보다 0.1점 더 정직했으면 합니다. SCA 87.5에서 87.6, 다시 87.7로. 평생 1점도 안 되는 차이지만, 14년에 걸쳐 천천히 올라가는 그 작은 숫자가 저희가 일하는 이유입니다.

마실 때마다 다른 풍경이 떠오르는 잔, 그것을 매일 새벽 만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카운터에서 만나면, 어떤 잔을 좋아하시는지 천천히 들려주세요.

— 최우진, 호산 로스터스